투란도트라는 뮤지컬 중 '빛이 없는 세상'이라는 노래가 있다.
깊이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저기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눈이 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난 누구인가 난 어디 있나 무엇이 날 답답하게 하나
스산한 바람이 내 앞을 스치네
이 바람 한 번도 눈길 주지 않네
마치 심장이 없는 바위처럼 느껴져
난 살아있나 난 죽어있나 무엇이 날 살아있게 하나
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다.
온통 어둠뿐인 세상
온통 시꺼먼 세상
어떤 이에게는 소름 돋게 싫은 상상이며
다른 이에게는 평온함을 주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아침 7시 30분 정도가 되면 나는 걷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은 맑은 하늘
세상은 밝다.
어느 날은 흐린 하늘
세상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오늘의 하늘은 푸른색
하늘엔 해가 뜨고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걷는 길은 해를 늦게 보게 된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에 큰 나무들이 자라 있기 때문이다.
딱 한 구간 떠오르는 햇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볕을 받기 위해 몇 번이고 뱅글뱅글 돈다.
오늘같이 기온이 뚝 떨어져 한기가 느껴질 때면 두 손을 들어 햇살을 쬔다.
해를 정면으로 하고 뒤를 돌면 나무에 살짝 가려진 호수가 보인다.
최근 걷기를 마치고 들어가기 전 호수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호수가 그린 풍경 때문이다.
2마일 걷기를 마치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흐린 날 보았던 호수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역시 호수의 분위기는 달랐다.
어제의 호수는 빛없는 흐린 하늘같이 회식빛 물결만 일렁였다.
며칠 전 맑은 하늘에 빛이 환할 때 그렸던 그 아름다운 그림은 없었다.
오늘은 기대를 하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빛이 더 필요한 듯 호수는 그림을 그리다 말았다.
이것이 빛 때문인지 나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나이 50에 가진 지식은 턱없이 부족한듯하다.
며칠 전 바라보았던 호수는 건너편 건물들까지 아주 자세히 그려내고 있었다.
물에 떠있는 건물들은 잔잔하게 일렁였고 오리들은 건물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없이 흐린 날의 호수는 스산했었다.
오늘은 호수가 늦잠을 자는 건지도 모른다.
조금 더 있으면 호수가 일어나 그림을 시작할지도.
집에 가는 길에 나무 그림자를 보았다.
맞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보인다.
호수도 빛이 더 나길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없는 호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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